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낯선 사람의 ‘좋아요’ – 심리 드라마

카테고리 없음

by Waqar Hassan 2026. 8. 21. 02:37

본문

 

새벽 2시 17분이었다. 뉴욕의 거리는 여전히 불빛으로 환했지만, 이단 콜 의 아파트는 어두웠다.

빛을 내는 것은 단 하나, 그의 휴대폰뿐이었다. 이단은 침대에 반듯이 누워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새로고침을 했다. 좋아요 8개. 다시 새로고침. 여전히 8개. 세 번째로 눌러도 여전히 8개였다.

"제발…" 그는 휴대폰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10초가 지나자 다시 집어 들었다.

좋아요 8개. 이단은 눈을 감았다. 어제 이 시간, 그의 게시물 하나는 좋아요 3만 1천 개를 받았었다.

오늘은 겨우 8개. 그에게 이것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었다 — 하나의 질문이었다. "사람들이 나를 잊은 걸까?"

석 달 전, 이단은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뉴욕에 사는 젊은 시나리오 작가였다.

카페에 앉아 대본을 쓰고,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주말엔 영화를 봤다.

완벽한 삶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굴러갔다. 그러다 뭔가가 바뀌었다.

처음엔 파티에 덜 나가기 시작했다. 그다음엔 친구들의 메시지에 늦게 답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아예 답하지 않게 되었다. 결국엔 집을 나서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아침이면 알람이 울렸다. 이단은 눈을 뜨고 천장을 바라보다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휴대폰을 집는 건 쉬웠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거나, 누군가의 집에 가거나, 샤워를 하는 것 — 그 모든 게 어려웠다.

하지만 휴대폰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준비할 필요도, 억지 미소를 지을 필요도 없었다.

대화가 불편해지면 그냥 화면을 잠그면 됐다. 누군가 자신을 평가한다 싶으면 익명 계정 뒤에 숨으면 됐다.

서서히 이단은 깨달았다 — 소셜 미디어는 더 이상 그의 오락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사회생활이 되어 있었다.

어느 날 밤 이단은 게시물을 하나 올렸다 — 단 한 문장이었다. "가끔은 사람이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저 누군가 자신을 알아봐 준다는 느낌만 필요할 때가 있다." 그는 글을 올리고 휴대폰을 옆에 내려놓았다.

5분 후 확인했다. 좋아요 12개. 그는 미소 지었다. 10분 후엔 47개.

한 시간 후엔 312개. 그리고 숫자는 빠르게 치솟았다 — 1,100, 4,800, 12,000.

이단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눈에 눈물이 고인 채, 숫자는 다시 바뀌었다. 3만 1천.

댓글이 쏟아졌다 — "제 마음을 그대로 표현해 주셨네요," "저만 그런 줄 알았어요," "고맙습니다."

이단은 휴대폰을 가슴에 꼭 안고 조용히 말했다. "난 투명인간이 아니야."

그날 밤, 몇 달 만에 처음으로 그는 세상 누군가가 정말로 자신을 보고 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의 가장 위험한 점은 가끔 당신의 게시물을 무시한다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때때로 엄청난 보상을 주고, 그러면 당신이 그 보상을 다시 얻고 싶어진다는 것이었다.

이단에게 일어난 일이 정확히 그것이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다시 글을 올렸고, 또 올렸고, 세 번째로 올렸다.

하지만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 좋아요 4개, 9개, 2개.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제는 3만 1천, 오늘은 2. 그는 게시물을 지우고, 새로 올리고, 그것도 지우고, 또 올렸다.

계속 화면을 새로고침하면서도, 그는 자신이 더 이상 소셜 미디어를 쓰는 게 아니라 — 소셜 미디어가 자신을 쓰고 있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

그즈음 프린스턴 대학교의 한 연구팀도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있었다.

계산신경과학자 야엘 니브(Yael Niv)와 심리학 교수 클레어 길런(Claire Gillan)은 소셜 미디어 행동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들은 X(트위터)의 세 가지 데이터셋에 걸쳐 7,000명이 넘는 사용자를 분석했고, 각 사용자의 가장 최근 게시물 3,200개를 살펴보았다.

흥미로운 패턴이 드러났다. 우울감의 영향을 받는 일부 사용자는 사회적 피드백에 더 민감해 보였다.

이 연구가 소셜 미디어가 우울증을 일으킨다는 뜻은 아니었지만, 하나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어떤 사람들은 현실에서 찾기 어려워진 사회적 연결을 소셜 미디어에서 찾으려 한다는 것이었다.

이단은 이 이론의 완벽한 예처럼 보였다.

어느 날 이단은 휴대폰을 집어 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 그는 소셜 미디어 앱을 삭제했다.

휴대폰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5분이 지나고, 10분, 20분이 지났다.

그는 안절부절못하다 다시 휴대폰을 집어 들고 앱을 재설치하기 시작했다.

설치가 끝나기 전, 전화가 울렸다 — 모르는 번호였다. 그는 무시했다.

다시 울렸다. 또 무시했다. 세 번째 벨소리에 그는 짜증을 내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단?"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 소피야." 이단은 눈을 감았다.

소피는 그의 오랜 친구였다. 그는 몇 초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가 부드럽게 물었다. "괜찮아?"

"응." 그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소피가 웃었다.

"너 거짓말할 때 꼭 3초 더 침묵하더라."

눈물이 차올랐다. 처음으로 그는 진실을 털어놓았다. "아니. 안 괜찮아."

다음 날 그들은 카페에서 만났다. 이단은 어색했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소피는 잔소리도, 조언도 하지 않았다 — 그저 그의 맞은편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한참 후 그가 말했다. "내 게시물이 어제 좋아요 3만 1천 개 받은 거 알아?"

그녀가 미소 지었다. "응, 봤어." 그가 물었다. "그 순간엔 내가 뭔가 의미 있는 존재 같았어."

"지금은?" 그는 컵을 내려다보았다. "지금은 그냥 숫자였다는 생각이 들어."

"그럼 뭐가 널 의미 있다고 느끼게 했을까?" 그녀가 물었다. 이단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는 답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날 밤 이단은 예전의 그 화제작 게시물을 다시 열어보았다 — 좋아요 3만 1천, 댓글 수천 개.

하지만 이번엔 다른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 사람들 대부분은 그를 알지도 못했다.

그들은 그의 한 문장에 좋아요를 누르고, 프로필 사진을 슬쩍 보고, 버튼을 누른 뒤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을 뿐이었다.

처음으로 그는 이해했다. 좋아요 3만 1천 개가 3만 1천 개의 관계를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좋아요 8개도 아무도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을. 숫자는 그저 숫자였다.

그 숫자에 의미를 부여한 건 그 자신의 마음이었다.

며칠 후 이단은 야엘 니브가 소셜 미디어와 인간 행동에 대해 강연하는 프린스턴의 공개 행사에 참석했다.

그는 청중석에 조용히 앉아 그녀의 말을 들었다. "현실에서 사회적 피드백은 복잡합니다."

"누군가의 미소가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측정할 수는 없죠. 하지만 소셜 미디어는 당신에게 숫자를 줍니다."

"좋아요 10개, 100개, 1만 개." 그녀가 청중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오늘 좋아요 10개를 받고 내일 8개를 받았다면… 정말 당신의 가치가 20퍼센트 줄어든 걸까요?"

청중 사이에서 잔잔한 웃음이 일었다. 이단은 웃지 않았다 — 마치 그 질문이 자신을 정확히 겨냥한 것처럼 느껴졌다.

니브가 덧붙였다. "숫자는 의미 있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반드시 의미 있는 건 아닙니다."

이단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이번엔 화면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몇 달 후, 이단의 삶은 완벽하지 않았다. 여전히 가끔 외로움을 느꼈다.

여전히 소셜 미디어를 확인했고, 게시물에 좋아요가 달리면 여전히 작은 짜릿함을 느꼈다.

유일하게 달라진 점은, 이제 숫자가 자신의 정체성이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 저녁 소피가 물었다. "왜 아예 소셜 미디어를 끊지 않아?"

"그게 적이 아니니까." 이단이 말했다. "그럼 뭐가 적인데?"

그는 잠시 생각했다. "아마도… 그게 줄 수 없는 걸 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할 때겠지."

"뭘?" 그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내가 가치 있는 존재라는 증거."

그날 밤 이단은 마지막 게시물을 하나 올렸다 — 이번엔 화제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이렇게 적었다. "오늘은 좋아요를 하나도 못 받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는 괜찮다."

그는 글을 올리고 휴대폰을 탁자 위에 내려놓은 뒤 침실을 나섰다.

잠시 후 알림이 떴다. 좋아요 1개. 그리고 또 하나 — 2개.

그리고 세 번째 — 3개. 이단은 방으로 돌아와 화면을 보고는 미소 지었다.

그러고는 휴대폰을 껐다.

처음으로 그는 이해했다. 때로는 가장 중요한 '좋아요'는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스스로에게 주는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날 밤, 이단은 화면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삶을 선택했다.